2013년 8월 10일 토요일

저자의 죽음에 관한 고찰

<저자의 죽음에 관한 고찰> 저자는 누구인가? 우선 롤랑 바르트의 의견을 가장 중립적인 입장을 택할 수밖에 없는 '위키피디아'를 통해 들어보자. 이후 필자의 견해를 댓글을 통해 밝히도록 하겠다. - 롤랑 바르트 (1915~1980) -   초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에서 참여적 실존주의자로 후기에는 기호 언어학자에서 원전 비평가로 그 얼굴을 바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의심할 바 없이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의 이론가 중 가장 기발하고 재간 있고 대담한 이론가였다. 그의 문학 비평이 언어 사회학이나 구조주의 기호학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프랑스적 수재의 전형인 롤랑 바르트는 그 외모에서 보듯 아주 지적이고 때론 아주 차갑게까지 느껴진다. 그는 조르주 바타이유처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서구 문화의 광기와 열정으로 넘치는 첨단 문학가임에는 틀림없다. 롤랑 바르트의 문학적 이상은 ‘글쓰기의 신화에서 완전히 벗어난 에로티시즘의 회복’에 있다. 이는 말의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성의 원전을 그대로 복구하려는 시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문학의 장르보다는 원전 연구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는 불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연관의 관계를 캐내기 위해서 그 원전들을 초월해 나간다. 그의 의도는 소위 모든 허위 관념과 지배 이념을 폭로하는 데 있다.   그는 원문들 속에 숨어 있는 또 그 배후에 깔려 있는 것들을 추정하며, 행간에 담긴 단어들과 의미들을 재해석하며 글의 내용을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연상하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는 『글쓰기 영도(零度)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원전의 배후 의도를 밝히고 모든 언어의 원형적 무의식인 세계를 벌거 벗기려 했다.   글쓰기 0도란 글쓰기에 있어 의미의 폐쇄, 후퇴 그리고 보류를 뜻한다. 롤랑 바르트는 글의 의미 그 자체보다 그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진정한 글쓰기의 거부하는 것이고 또한 그 문턱을 넘는 것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글쓰기를 하지 않는 글쓰기(écriture sans écriture)' 라는 것이다.   단순한 관능적 즐거움이 아닌 정신적 희열을 추구하는 이 '본원적 글쓰기(archiécriture)' 는 무엇보다도 '이미 쓰여진 문화 (always ahead written)' 체계 내의 작업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문학이 사라지고 더 이상 거짓말투성이의 그 비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제로점'에서 그는 다시 문학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관점은 다시 문학을 본래의 것으로 돌려놓고, 중립적일 수 없는 글쓰기를 '중립화 (neutralité)'하는 것이다.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말, 결코 그치거나 들려 주지 않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며 글쓰기의 원점과 태초 원형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롤랑 바르트는 초기에 사르트르 등 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참여 문학(littérature engagée)'을 통해 인간애를 발휘하여 프티-부르주아적 출신을 초월하려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기도 했지만, 여타의 지식인 마찬가지로 그는 결국 소쉬르의 기호학에 가담하게 되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즉 어떻게 신화들이 인간 안에서 사고하는가 하는 점과 그 공통적 기원을 언어학적 방법론으로 사회 현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이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그는 기존의 문학과 비평을 전면 거부하고, 작가의 창조력까지도 넘어서는 비평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비평이 작가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난 진정한 문학의 독립 장르임을 선포했다.   조장하는 대중 매체의 의해서 은폐된 메시지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우파나 좌파 가릴 것 없이 그 신화의 위장성과 허위성을 파헤친다. 롤랑 바르트는 1850년경 플로베르나 발자크를 고비로 부르주아적 질서가 해체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단지 그의 비평의 작은 시작일 뿐이다.   프랑스의 고전 문학은 부르주아적 질서의 불가피성을 꾸밈없이 반영 그 가치를 약호화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에서부터 우리는 그의 문학 비평이 얼마나 엄청난 선전 포고이며 그의 문학의 길이 평탄하지 않음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우선 글쓰기에 있어 언어소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서술 방식의 출현을 파편화하고 작가의 부르주아적 기원을 캐내어 제시한다.   그는 작가의 언어를 통해 소위 문학적 창조를 검증한다는 것과 언어와 특수한 원전들에서의 표현이 이런 뿌리에 근거한 것이라는 역사적 차원 사이를 구별시켜 준다는 것이 유용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는 문학 전통의 모든 영역을 공격자였다. 문화 전쟁의 홍수 시대에 그는 가장 적이 많은 지휘자 역할을 했고 그의 비평은 무자비한 융단 폭격이다.   그의 이 노력의 방법론은 '통렬한 아이러니(devastating irony)'인데 이것은 결국 이중 부정 내지 양자 부정일 수밖에 없다.  그는 영화나 관광을 포함한 대중 소비 문화에까지도 언급을 하면서 상업성과 자본 증식의 대가는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상실을 초래했다고 보며 이제는 단지 하나의 스포츠와 오락만 남게 되었다고 꼬집는다. 그는 라신(Racine) 연구에서 라신의 파토스 속에 숨긴 정치적 의도를 맹공격한다. 그의 연극 속에 주인공의 열정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적 상황에 있어서의 힘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라신의 비평의 대가 레이몽 피카르 (Raymond Picard)는 그와 격렬한 논쟁이 벌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롤랑 바르트는 20세기에 최대로 존경받는 랑송(Lansonisme)까지도 그의 비평의 대상에 포함시킨다. 그는 그들의 비평을 정치적이고 지적 보수주의이며 실증적 부르주아 이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롤랑 바르트의 신비평을 '악마의 손잡은 사악한 원흉'이라고 되받아 치고 있다. 바르트는 1960년 『작가의 죽음 The death of the author』을 선언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 글에서 작가는 텍스트의 기원이고 의미의 근원이며 해석을 위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거부했다.   그는 작가를 평가 절하하여 다음과 같이 꼬집어 말하고 있다. “작가란 그 시대의 재능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작가가 범하는 가장 큰 과오는 언어가 독자에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진리 또는 사실로 알게 하는 가장 자연적이고 솔직한 매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 창출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텍스트들은 항상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이 점은 그러한 해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학적 내지 구조주의적 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비평에서는 텍스트의 통일성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의 구조에 달려 있다고 믿었고, 인본주의적 내지는 인간주의적 개념을 추방하는데 급진적이었다. 동시에 그는 독자의 고유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작가가 가진 모든 형이상학적 상태를 벗겨 버리고 사거리 골목으로 그 지위를 낮춘 다음 그곳에 인용과 반복, 모방과 지시 교차와 재교차의 무한한 보고를 올려놓는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어느 방향으로든지 텍스트에 가담하는 데 자유롭게 해 주었다. 거기에 어떤 공식은 없다. 그의 이런 충격적 선언은 그를 사람들이 논쟁을 좋아하는 인물, 독단론자, 이념적 인상주의자로 불리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지 모른다. 1968년 『기호학 요강(Éléments de la sémiologie)』에서 그는 언어와 그의 메시지를 탈신화화하는 데 주력하여 근대 모든 작가를 그의 비평 언어에 끼어 넣었다. 그는 문헌 연구에서 인류 문화의 모든 기호 체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언어를 단지 기호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실재를 창조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오히려 우리를 위해 실재를 구성한다는 구조주의 언어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더 나아가 기호학적 분석은 다시 언어로 무너져 버린다고 경고와 함께 현실로 완전히 침투하는 예술 즉 예술과 현실의 경계는 그 둘이 보편적인 모조품으로 전락하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라고 봤다. 바르트는 문학뿐만 아니라 패션, 레슬링, 스트립쇼,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 사진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 회사까지 포함하여 문화적인 모든 것의 부호 해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호학 옹호자였다. 다시 말해 이미지, 몸짓, 음악적 음향으로 된 모든 것을 기호라고 주장은 전통적 작가로부터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기호학자에게 언어로부터의 출구는 없다, 그 분석을 수행하는 그의 소위 '메타 언어(méta-langage)'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개념은 1차 언어를 넘어서는 2차 언어를 뜻하며 언표 되지 않은 언어의 무의식적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언어의 메시지는 단지 하나의 유통 과정이거나, 자율 신경적 통로 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발생 시기에 있어서 단어의 '기호적 지향(parole parlante)'과 '언표된 언어(parole parlée)' 를 확연히 대립시켜 구분하고 있다. 메타 언어는 일상 언어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주의와 같은 기술적인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말하는 언어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1920년대에 메타 언어로서의 논리적 한계에 도전 받기도 했다. 특권이 부여된 또는 메타 언어적인 입장은 언어 자체에 의해 창조된 신기루이다. 구조주의와 기호학 그리고 의미의 수수께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한 다른 형태의 메타 언어들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올 뿐 이 역시 출구는 없다. 이 '초언어학(trans-linguistique)'은 사회 속에 기호들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 소시민적인 신화의 폭로와 함께 과학적으로 발전된 방법 접근이다. 그는 점차 러시아 형식주의와도 담을 쌓으면서 또한 이런 구조주의와 조금씩 멀어 지면서, 더욱 더 원전 분석에 정열을 쏟는다. 1973년경에 나온 『원문의 즐거움(Le plaisir du texte)』에서 그는 이런 개념들을 도입한다.   '파편, 사실, 경구, 건드리기 및 치기, 찌르기, 팔꿈치로 치기, 거품 내기, 반응 떠보기, 불가피한 무작위의 계기와 쾌락을 잡아내기, 행복을 얻기'를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열망하는 임의적인 계획에서의 불가피하게 무작위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원전 연구에 더욱 기울어진 것은 1968년 학생 시위로 좌파 지식인들이 탈정치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정치적 행동의 무용성이 대두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발자크의 단편 『사라신(Sarrasine)』 를 561개의 '독서 단위(lexia)'로 나누어 분석하기도 했다 그의 5가지 약호 즉 '해석학적 분류, 의미론적 분류, 상징적(다의적) 분류, 서술적(행동적) 분류, 문화적 분류' 등을 통해 원문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가 우리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삶의 상실과 고통 빠지게 된다는 말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말의 논리와 성의 게임은 신화나 설화의 본질을 왜곡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시라는 장르는 그 기생성으로 혹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그의 문학 시기를 흔히 초기 '감탄(émerveillement) 시기’, 중기 '과학 (science)시기’, 말기 ‘텍스트(texte) 시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말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그는 원전 연구에 깊이 빠진다. 원전에서 얻어지는 '텍스트의 지적 쾌락(plaisir)’은 '단순한 즐거움(jouissance)’과 구별되는 것이다. 사드, 푸르니에, 로욜라 문학에 대한 문학 비평은 신성 모독과 같은 효과를 낸다. “책은 의미를 창출하고 의미는 삶을 창출한다” 라는 말은 독자에게 자기 방식으로 원전을 해석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원죄의 즐거움과 원문의 즐거움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나체의 미가 의복을 만나는 순간 성적 쾌감이 모아지듯이 텍스트의 효과는 주석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언어와 관련되어 비정통적이거나 부당한 어떤 것을 낳게 된다고 보았다. 그의 말기의 저서 『에스 제드(S/Z)』에서 레비-스트로스 부족 전체 문화 체계 속 파악처럼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자유롭게 텍스트 의미 형성하고 참여하며 텍스트의 절대적 근원과 그 의미의 존재를 부인한다. 독자가 참여하는 텍스트를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번째 유형은 독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며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로 보는 것과 두번째 유형은 작가성을 지닌 생산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독자를 고전적 의미의 단순한 소비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원적 의미의 적극적인 생산자로도 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위의 후위'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S/Z]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로 파악하는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언어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단어 창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지적 사회의 문화 전쟁 속에 대표 주자로 그는 더욱 무례하고 신랄하며 제멋 대로다. 원전의 개념은 문학의 개념으로 배로 확대하면서 그는 더욱 파란과 논란의 비평가가 된다. 그는 또다시 무정부주의자의 신, 보수주의자에겐 악마, 문화 애호가에겐 우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는 모든 문학의 범주화를 거부하고 그의 시대 보다 앞서 치고 가면서 기상천외한 재치와 해박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현대 최고의 지성이다. 프랑스의 예술 사회학자 장 뒤비뇨(Jean Duvignaud)는 그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상징과 기호를 통해 자유의 감동과 … 미래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폭넓은 경험을 얻으려는 실존력을 다루었다.” 신화에 의한 허위 환상에 의해 정지된 즐거움을 원점을 만나게 해 모든 문학의 본래적 의도와 쾌락을 되찾게 해주려는 그의 의도는 참으로 많은 파란과 혹평한 세평을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그는 현대 사회와 문학 비평에 많은 물음표를 던지 사람이다. 논쟁의 구심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의 신화에서 벗어난 글쓰기의 0점에서 글쓰기의 근본적 반성과 함께 진정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문학적 쾌락주의자였다. 화법의 한 형식이기도 한 모든 신화의 허구성과 모순성을 깨트리며 문학의 과학화와 정보화를 꾀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21세기의 문학과 문화의 새 출발과 가능성을 열어 준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금세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진정한 비평 문학의 한 장르를 개척한 문학 논쟁의 최전선 전사요 특이한 기호 문학가였다. 그의 글은 문학 장르를 해체하고 새롭게 태어난 글쓰기의 실천가였다. 즉 그의 글은 그 자체가 시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연극이기도 하고 수필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고 비평이기도 했다.   위키페디아 내용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1980)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그의 생애]  소르본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파리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했다. 이후 부카레스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대학강사를 하며 보냈고, 1952년 파리의 국립과학센터(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의 연구원이 되었다. 1953년 근대문학의 형성을 다룬 《글쓰기의 영도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가 출판됐고, 1957년 일상생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기고문을 모아 엮은《신화론 Mythologies》이 뒤따랐다. 1962년 프랑스고등연구실천원(프랑스어: 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연구책임자로 임명됐다.  1960년대 기호학과 구조주의에 전념했지만(《기호학원론 Éléments de sémiology》(1964), 《유행의 체계 Systéme de la mode》(1967)), 곧이어 구조주의를 폐기했다.(《S/Z》(1970), 《텍스트의 쾌락 Le Plasir du texte》(1973)).  다재다능하여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렸던 바르트는《오브비와 옵투스 L'Obvie et l'obtus》(1982)에서 슈만과 톰블리(C. Y.  Twombly)를,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 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1982) 에서 사진을 다루었다.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 Collége de France)의 문학기호학 교수로 초빙됐다.  바르트의 다방면의 작품들은 고유한 발전과 현실적 위치를 끊임없이 성찰한 결과들이다 (자서전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와 대담집 《목소리의 결정 Le Grain le la voix. Entretiens 1962~1980》(1981) 참고).특히 그가 쓴 '작가의 죽음'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 교통사고로 죽었다. Entretien avec Roland Barthes   [그의 저서] 《글쓰기의 영도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 Paris 1953 《신화론 Mythologies》 Paris 1957 《기호학원론 Éléments de sémiology》 Communications 4 1964 《유행의 체계 Systéme de la mode》 Paris 1967 《기호의 제국 L'Empire des signes》 Genf 1970 《텍스트의 쾌락 Le Plasir du texte》 Paris 1973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R. B. par. R. B. Paris》 Paris 1975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Paris 1977 《강의 Leçon》 Paris 1978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 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 Paris 1980 《목소리의 결정 Le Grain le la voix. Entretiens 1962~1980》 Paris 1981 《비평에세이 Essais critiques III.  L'Obvie et l'obtus》 Paris 1982 《비평에세이 Essais critiques IV.  Le Bruissement de la langue》 Paris 1984 《기호학의 모험 L'Adventure sémilogique》 Paris 1985 《작은 사건들 Incidents》 Paris 1987 《전집 Œuvres complétes》 Paris 1993~1995 * 위키피디아 본문 이전 저자의 죽음: http://blog.hani.co.kr/seulsong/27656







댓글 1개:

  1. <01> 비록 저자의 제국이 아직도 무척 강력하기는 하지만(신비평은 자주 그 제국을 공고히 했을 뿐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몇몇 작가들이 그것을 붕괴하려고 시도해 온 것은 자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말라르메가 그 첫 번째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언어의 소유주라고 여겨져 왔던 자를 언어 자체로 대체할 필요성을 광범위하게 인식하고 예견했다. 그에게서 또 우리에게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말하는 것은 언어이지 저자가 아니다. 쓴다는 것은 선행적인 몰개성-사실주의 소설가들의 그 거세적인 객관성과는 결코 혼동될 수 없는-을 통하여 가 아닌, 오직 언어만이 작업하고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라르메의 모든 시학은 글쓰기를 위해 저자를 제거하는 데에 있었다(뒤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독자의 자리를 회복시키고자 함이다).
     
    발레리는 자아의 심리학으로 인해 조금은 혼란한 상태에서 말라르메의 이론을 약화시키기는 하였지만, 그의 고전주의적 취향에 의해 수사학의 가르침을 준수하면서도 계속해서 저자를 의문시하고 조롱하였고, 자신의 활동의 언어학적이고 '모험적인' 성격을 강조하였으며, 전 산문 저술을 통하여 문학의 본질적인 언술적 조건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 조건 앞에서 작가의 내재성에 대한 모든 의뢰는 순전히 미신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프루스트 자신도 그의 분석(analyse)이라 불리는 것의 외관상 심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작중 인물의 관계를 지극히 정교한 수법으로 가차없이 뒤섞어 놓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화자를 보고 느끼고 쓰는 자가 아니라, 이제 글을 쓰려고 하는 자로 만들었다(소설의 그 젊은이, 그런데 사실 그는 몇 살일까? 누구일까?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글을 쓸 수 없는 그. 그리고 소설은 드디어 글쓰기가 가능해질 때 끝이 난다). ...(중략)...
     
    저자의 멀어짐은(브레히트와 더불어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적 무대 저 끝에 있는 단역 배우처럼 축소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 혹은 글씨기의 행위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인 글쓰기를 완전히 변모시킨다(혹은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텍스트는 그 속에서, 그 모든 층 위에서 저자가 부재하도록 만들어지고 읽혀진다). 우선 시간도 더 이상 같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저자의 존재를 믿는 한 저자는 항상 그의 책의 과거로 간주되어 왔다. 책과 저자는 과 로 배열된 동일선상에 위치한다. 저자는 책을 부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 책 이전에 존재하고, 책을 위해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그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서처럼 자신의 작품과 선행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와 반대로 현대적인 필사자(scripter)는 자신의 텍스트와 동시에 태어난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선행하거나 초과하는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갖고 있지 아니하며, 자신의 책이 술어가 되는 그런 책의 주어가 아니다. 거기에는 단지 언술 행위의 시간만이 존재하며, 모든 텍스트는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진다. ...(중략)...
     
    우리는 이제 텍스트가 하나의 유일한 의미, 즉 (저자-신의 인) 의미를 드러내는 단어들의 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중 어느 것도 근원적이지 않은 여러 다양한 글쓰기들이 서로 결합하며 반박하는 다차원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이다. 위대하고, 동시에 희극적인 저 영원한 필경사 부바르 페퀴셰처럼 - 그 우스꽝스런 심오함이 바로 글쓰기의 진실을 말해 주는 - 작가는 결코 근원적인 몸짓이 아닌, 다만 이전의 몸짓을 모방할 뿐이다. 그의 유일한 권한은 글쓰기를 뒤섞거나 대립하게 하여, 그 중 어느 하나에도 의존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그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가  하는 내적인 은 그 자체로서 이미 만들어진 사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전 안에서 낱말들은 다른 낱말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무한하다는 것을. ...(중략)... 저자를 계승한 필사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마음속에 정념이나 기분.감정.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하나의 거대한 사전을 가지고 있어, 거기서부터 결코 멈출 줄 모르는 글쓰기를 길어올린다. 삶은 책을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책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이다.
      
    이렇게 저자가 멀어지면, 텍스트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이 된다. 텍스트에 저자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안전 장치를 부과하고, 최종적인 기의를 제공하고,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비평에 아주 걸맞는 것이다. 비평은 작품 아래에서 저자(혹은 위격[位格]에 해당하는 사회.역사.심리.자유 등)를 발견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는다. 그리하여 저자가 발견되면, 텍스트는 , 비평은 승리한다. 따라서 저자의 통치는 역사적으로 곧 비평의 통치였으며, 그리고 이런 비평이(비록 그것이 신비평이라 할지라도) 오늘날 저자와 더불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글쓰기의 복수태 안에서 모든 것은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 해독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구조는 연속적이며, 그 모든 이음새나 모든 단계에서 (마치 스타킹 올이 나갔다고 말하는 것 처럼), 거기에는 바닥이 없다. 글쓰기의 공간은 답사하는 것이지 꿰뚫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끝없이 의미를 상정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의미를 증발하기 위해서이다. 글쓰기 의미를 체계적으로 비워 나간다. 이렇게 해서 문학은(이제부터는 글쓰기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텍스트에 (그리고 텍스트로서의 세계에) 하나의 을,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른바 반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진정으로 혁명적인 그런 활동을 분출시킨다. 왜냐하면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신과 그 삼위일체 위격인 이성.과학.법칙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아무도(어떤 도) 그 문장을 말하지 않는다. 그 근원이며 목소리는 글쓰기의 진정한 장소가 아니다. 그 진정한 장소는 바로 글읽기이다. ...(중략)... 텍스트의 통일성은 그 기원이 아닌 목적지에 있다. 그러나 이 목적지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일 수는 없다. 독자는 역사도 전기도 심리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씌어진 것들을 구성하는 모든 흔적들을 하나의 동일한 장 안에 모으는 누군가일 뿐이다. ...(중략)... 이제 우리는 글씨기에 그 미래를 돌려주기 위해 글쓰기의 신화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pp. 28-35 | 롤랑 바르트 | 김희영 옮김 | 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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